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비야 카디르 (문단 편집) == 논란 == 여기까지만 보면 [[위구르]]판 [[달라이 라마]]처럼 보이겠지만, 라비예 카디르의 운동은 [[일본]] [[극우]]의 지원을 받았다는 문제가 있다. 특히 2012년에 [[야스쿠니 신사]]를 방문하여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. >"(야스쿠니 신사는) 일본 민족혼의 상징적인 장소입니다. 「日本民族の精神の象徴的な所である」" >"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역사를 배우는 것입니다." 「ここを訪問することは歴史を学ぶことである。」 >"(이곳에 안치된 영령들은) [[제2차 세계대전]]에서 전몰한 일본의 영웅들입니다. " 「第二次世界大戦で亡くなった方々は日本の英雄である」 일본어 발언 출전은 [[일본어 위키백과]] [[https://ja.wikipedia.org/wiki/ラビア・カーディル|링크]] [[http://kor.theasian.asia/archives/34972|관련 기사]]. 단 이 기사 역시 너무 중국 중심적으로 치중되어 있으므로 [[야스쿠니 신사]]를 참배했다는 점만 제외하면 나머지는 중립적으로 바라봐야 한다. 신사 참배는 [[일본]]의 [[혐중]] 세력에 의해 반강제된 부분이 없지 않다. 그녀는 [[무슬림]]이기에 [[야스쿠니 신사]]라는 전범 상징성을 떠나더라도 신사참배는 종교적인 부분에서 [[이슬람교]] 교리와 배치되기에 무슬림에게는 문제가 된다. 따라서 위구르인들 중에서 레비야 카디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. 현재 위구르 독립운동 관련 [[페이스북]] 계정에서도 그녀가 헤드라인에서 많이 못 올라오게 만드는 대표적인 [[흑역사]]. [[티베트 독립운동]]이 [[달라이 라마]]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다르게 위구르 독립운동은 한 사람을 대표삼아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. 하지만 카디르가 [[반중]]감정과는 별개로 적어도 [[일본제국군]]의 전범을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데다가, 그것도 참배했다는 것은 무슬림들 입장에서 용납하기 힘든 일이다. 보통 위구르 측에서는 [[적의 적은 나의 친구|일본이 중국을 싫어하며, 위구르도 중국을 싫어한다는 점에서]] 일본에 호의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.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[[중일전쟁]] 당시 중국 내 많은 모스크들이 훼손되고 무슬림들이 학살당한 것도 사실이기에 일본의 과거사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으며, 그것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위구르인도 많다. 주로 [[중국국민당]]에서 활약하던 [[후이족]] 군인들에 대한 심리전의 일환으로 행해졌다. 그래서 당시 후쑹산 같은 후이족 이슬람 학자들이 [[일본 제국]]에 대한 무슬림들의 지하드를 선포하기도 했다. 위구르 독립운동 세력은 중국과 다른 강대국 사이에서 움직일 수 밖에 없기에 이런 극단적인 강요를 받은 셈이다. 다른 이슬람 국가들도 반중 감정보다는 반서구 감정이 강하다보니 [[팔레스타인]] 문제 등에 더 관심이 쏠려있어서, 위구르 문제는 서방에서도 중동에서도 상대적으로 묻히는 편이다. 쿠르드도 중동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편이다. 때문에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일본 극우들과 가까워지고 또 그럼으로 인해 인식이 안좋아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. 하지만 결국 인권운동가이기도 한 그녀가 이곳을 참배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경악스럽기도 하다.[* 사실 [[달라이 라마 14세]]도 [[야스쿠니 신사]]를 참배했다는 의혹이 있으며, 카디르의 경우와 비슷하게 야스쿠니 신사의 실태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본 측의 지속적인 요구에 따라 다녀온 것에 가깝다.] 일본 극우들은 [[위구르]], [[티베트]], [[파룬궁]] 문제를 순수하게 접근하지 않고 중국을 바난하기 위한 도구의 하나로 본다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. 레디야 카디르도 [[적의 적은 나의 친구]]라는 입장에서 이런 일본 극우에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, 이렇게 명백한 침략주의를 [[진영논리]]로 옹호하는 것은 본인의 운동 자체에 해가 될 것이다. 이런 점에서 [[팔레스타인]]의 [[정치인]]이자 [[독립운동가]]이기도 했었던 [[아민 알 후세이니]]와 비슷하기도 하다. [[나치 독일]]도 아민 알 후세이니를 비롯한 팔레스타인의 일부 정치인들을 속이고 이용했다. 그리고 일본과 손을 잡고 [[영국]]을 몰아내려 했던 인도의 [[찬드라 보스]]와도 비슷한 면이 있다.[* [[체첸]]이나 다른 [[캅카스#s-4.2|북카프카스]]의 [[분리독립]]주의자들도 [[반러]]감정이 심해진 일부 사람들의 경우는 나치도 긍정적으로 보아 [[우크라이나]] 동남부 내전에서 우크라이나 [[네오 나치]]계 극우들을 지지하는 경우도 있었다. 비슷하게 반러주의가 있는 일부 일본 극우들도 체첸, [[인구시]] 등을 지지하는 경우가 있으며, 이걸 아는 일부 체첸, 인구시, [[다게스탄]]의 반러 및 분리운동가들 역시 이러한 일본에 호감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. 비슷한 경우로는 [[쿠르드]]의 [[민병대]]들 역시 [[아랍인]]들의 차별에 맞서 팔레스타인보다는 [[이스라엘]]을 긍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.] 비슷하게 일부 위구르 독립운동가들은 [[ISIL]]과 같은 이슬람 원리주의와 손을 잡고 활동한 적도 있었다. [[https://thediplomat.com/2017/03/how-serious-is-the-islamic-state-threat-to-china/|#]] 반대 방향에서도 비슷하게 중국 네티즌들이 "과거 위구르에 [[이슬람]]이 전파되며 [[불교]]와 [[기독교]]를 박해했다."는 내용을 과장을 섞어서 퍼나르는 영어로 번역해 경우도 있다. [[분류:아시아의 여성 정치인]][[분류:독립운동가]][[분류:1946년 출생]][[분류:위구르족]][[분류:신장 위구르 자치구 출신 인물]][[분류:동튀르키스탄 독립운동]][[분류:중국의 인권운동가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